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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수출용 라면 속 유해물질...허용기준은 제한속도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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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수출용 라면 속 유해물질...허용기준은 제한속도와 같아

2023.02.01 00: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라면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대만‧태국에 수출한 라면의 스프에서 허용기준을 넘는 유해물질이 검출되어 유통이 중단됐다.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에틸렌 옥사이드’(EO)가 아니라 인체 독성이 의심스러운 ‘2-클로로에탄올’(2-CE)이라는 유기물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2021년 8월에도 유럽연합에 수출한 라면의 스프에서 2-CE가 검출되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었다. 유해물질의 유입 경로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허용기준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제조사의 어설픔이 몹시 안타깝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라면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건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내수용 라면에는 다른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제조사의 변명은 설득력도 없다. 사실은 지극히 부끄러운 궤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CE에 대한 규제를 엄격하게 시행하지 않고 있음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다행히 대만에서 검출된 2-CE의 양은 라면의 안전성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은 아니다. 미국이 정해놓은 인체노출 안전기준(체중 1kg 당 0.824mg)을 넘기려면 문제의 체중 60kg의 소비자가 라면을 한꺼번에 400개나 먹어야 한다. 쥐의 반수치사량(체중 1kg 당 89mg)을 넘기려면 무려 4만 개를 먹어야 한다. 한국식품안전연구원도 비슷한 취지의 의견서를 내놓았다.


그렇다고 대만·태국·유럽연합의 조처가 과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의 ‘허용기준’은 소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판매되는 모든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용기준 이상의 2-CE가 검출된 라면은 인체에 유해해서가 아니라 법을 지키지 않은 ‘불량식품’이기 때문에 유통이 금지된 것이다. 대만의 고속도로에서는 반드시 대만의 제한속도를 지켜야만 한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대만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에틸렌옥사이드(Ethylene oxide, EO)와 2-클로로에탄올(2-Chloroethanol, 2-CE)의 화학물질 정보. 국립생명공학정보센터 제공
에틸렌옥사이드(Ethylene oxide, EO)와 2-클로로에탄올(2-Chloroethanol, 2-CE)의 화학물질 정보. 국립생명공학정보센터 제공

● 에틸렌 옥사이드와 2-클로로에탄올

 

에틸렌 옥사이드(EO)는 인체 독성이 강한 휘발성 물질이다. 에틸렌 옥사이드는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식품재료에 묻어있는 세균·바이러스·곰팡이 등의 살균소독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에틸렌 옥사이드는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에서 가공식품에서의 잔류 허용기준을 실질적인 ‘불검출’ 수준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다행히 2021년 식약처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라면 제조사는 에틸렌 옥사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2-클로로에탄올(2-CE)은 에틸렌 옥사이드와는 전혀 다른 물질이다. 무색의 액체 상태인 2-CE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암을 일으키는 물질은 아니다. 그러나 흡입·섭취·피부접촉을 통해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2-CE는 EO가 염산과 반응해서 생성되기도 하고, PVC의 원료 물질인 염화비닐 제조에 사용되는 1,2-다이클로로에테인의 대사물질로도 알려져 있다. 일부 농약이나 비료의 2차 대사산물로 2-CE가 생성될 수도 있다고 한다.


가공식품에서 2-CE에 대한 규제는 국가에 따라 들쭉날쭉한 상황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2-CE가 1군 발암물질인 에틸렌 옥사이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EO와 2-CE의 합계가 0.02~0.1ppm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대만도 최근에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EO와 2-CE를 합쳐서 0.055ppm을 허용기준으로 설정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도 역사적 이유 때문에 유럽연합의 식품 규제를 따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캐나다의 2-CE 잔류 허용기준은 유럽연합보다 훨씬 높은 940ppm이나 된다. 수확한 농산물을 에틸렌 옥사이드로 살균·소독하는 관행을 고려한 것이다. 식약처는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중 2-CE의 허용기준을 잠정적으로 30ppm으로 설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반드시 유럽연합의 허용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허용기준’과 ‘제한속도’

 

허용기준은 정부가 가공식품·공산품·의약품·농축산물의 위생적인 생산·유통 관리를 위해 시행하는 품질관리제도의 일부다. 허용기준을 초과한 제품은 인체에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긴 ‘불법 제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불법 제품이 확인되면 정부가 제조·유통사에 법률에 따라 책임을 묻는다. 제조·유통 과정의 개선을 요구하거나, 리콜·과징금·보상을 명령하기도 하고, 무거운 사법적 책임을 묻기도 한다.


허용기준의 설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당연히 ‘인체 위해성’이다. 독성이 강한 물질일수록 허용기준을 낮게 설정한다. 만약 인체 위해성만을 근거로 허용기준을 설정한다면 국가마다 허용기준이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유해물질의 인체 위해성은 인종·민족·국가에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용기준의 설정에는 ‘사회적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허용기준을 감당할 수가 없다. 가공식품의 생산비가 늘어나고, 가공식품의 유통을 감시하는 정부의 관리 비용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허용기준을 느슨하게 설정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미국·캐나다가 에틸렌 옥사이드와 2-클로로에탄올에 대해서 관대한 것도 수확한 농산물을 관리하는 자신들의 관행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취향’도 무시할 수 없다. 벤조피렌은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이다. 그런데 숯불을 이용한 ‘직화구이’ 방식으로 식품을 조리하는 경우에는 벤조피렌의 발생을 완전히 차단할 수가 없다. 숯불에 떨어진 기름이 타면서 생기는 벤조피렌이 음식을 오염시킨다. 호흡을 통해 벤조피렌을 흡입하게 되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불 맛’에 진하게 느껴지는 가공식품에도 벤조피렌이 잔류하게 된다. 그런 벤조피렌을 엄격하게 관리하면 소비자는 불 맛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허용기준은 인체 위해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환경을 고려해서 설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허용기준을 운영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허용기준 때문에 소비자가 무작정 공포에 떨 이유는 없다. 


사실 허용기준은 고속도로의 제한속도와 같은 것이다. 고속도로에서의 과속은 위험하지만 반드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속 운전자에게 법에 정해진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반대로 제한속도보다 느린 속도로 운전한다고 반드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제한속도보다 느린 속도로 운행하는 자동차에서도 사고가 발생한다.


유해물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허용기준을 넘었다고 반드시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허용기준을 지킨 제품이라고 누구에게나 안전한 것도 아니다. 유해물질에 의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가능성은 사람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큰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허용기준은 실제 인체 독성을 걱정해야 하는 ‘안전기준’보다 충분히 낮게 설정한다. 급성독성이 의심되는 유해물질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래서 그런 허용기준을 ‘안전기준’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허용기준이 개인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허용기준을 초과한 제품에 대해서는 건강상의 피해가 아니라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문제 삼아야 한다. 특히 법을 무시한 기업이나 제 역할을 못한 정부를 바로잡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다만 법을 지키지 않은 기업에 정당한 책임을 묻고, 정부의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다. 소비자가 겁에 질려 호들갑을 떤다고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술,담배도 발암물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술·담배도 1군 발암물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술·담배·젓갈도 1군 발암물질

 

누구나 발암물질을 무서워한다.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목록이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IARC의 발암물질 분류는 단순히 인체발암성에 대한 근거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확실한지를 분류한 자료일 뿐이다. 발암성의 강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1군’(‘1급’이 아님) 발암물질에는 극단적인 거부감을 보인다. 심지어 인체 발암성이 확실하지 않은 ‘2A군’(인체발암의심물질)과 ‘2B군’(인체발암가능물질)도 거부한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우리는 1군으로 분류되는 술·담배·젓갈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300만 명이 술 때문에 사망하고, 600만 명이 흡연으로 사망한다. 흡연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71%가 폐암 때문이다. 술·담배·젓갈의 발암성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소비자가 가공식품에 들어있는 적은 양의 유해물질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암은 장기간에 걸친 반복적 노출에 의해 나타나는 만성독성이다. 과학적으로 확인된 발암성을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적은 양의 발암물질을 한 번 섭취했다고 당장 암에 걸릴 듯이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다는 것이 명백한 과학적 진실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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