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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알바보다 못하다는 자괴감"… 떠나는 이공계 대학원생

박나은 기자
입력 : 
2023-03-02 17:35:32
수정 : 
2023-03-02 20: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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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위권 대학의 공학계열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서 모씨(28)는 석·박사 과정 6년 동안 자신의 임금이 어떻게 측정돼 나오는지 알지 못한 채로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그간 자신이 일한 시간에 못 미치고,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를 받아 왔지만, 이에 의문을 제기하기엔 자신의 학위 과정을 담당하는 교수와의 관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서씨는 "대학원생들 대부분이 자신의 인건비가 어떻게 측정되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주는 대로 받고 교수의 지시를 따르며 연구생활을 이어간다"며 "교수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도 학위 과정에 지장이 있을까 두려워 참고 지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반도체 등 국내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이공계열 인재들을 양성하겠다고 나섰지만 최저임금조차 못 받으면서 각종 갑질 및 부당 처우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에 석·박사 이탈률이 가속화되고 신규 인재 유입도 막히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대학원 석사·박사 과정 재학생 중도퇴학자 수는 4년 새 전체적으로 증가했다. 자연·공학계열 중퇴자 수는 2018년 석사 2965명, 박사 1537명에서 2022년 석사 3033명, 박사 1649명으로 늘었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말 국가연구개발혁신법(R&D혁신법) 시행령 개정을 발표하며 올해 3월부터 학생 연구자의 인건비 기준이 월 30만∼50만원씩 인상됐다. 학부생은 월 100만원에서 130만원, 석사는 월 180만원에서 220만원, 박사 과정은 월 2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기준이 올라도 교수와 학생 사이의 협의를 통해 연구과제의 참여율을 정하고 참여율을 인건비 기준과 곱해 인건비를 계산하는 방식인 '학생인건비 통합관리제(풀링제)'와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사용기준에 '연구과제에 아무리 많이 참여하더라도 인건비 기준의 100%를 초과할 수는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실제로는 최저 기준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를 받는 대학원생이 많은 실정이다.

또 일부 대학원생의 경우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일하거나 인건비 하한선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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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연구하고 있다는 또 다른 대학원생 김 모씨(27)는 "인건비 하한선이 불명확해 많은 학생들이 최저임금보다 못한 돈을 받고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다"며 "기준액이 거의 상한선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학위 과정을 거치는 대학원생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겪어 이탈하거나 유입을 꺼리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교수가 학생의 학위 수여 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에 수직적인 관계에서 대학원생들은 교수의 불합리한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적인 업무에까지 동원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모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이 모씨(28)는 "교수님이 사적인 심부름을 자주 시켜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한 번은 자신의 자녀 학원 픽업을 맡긴 적도 있었다"며 "황당한 요구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는데, 이런 모습들 때문에 국내 진학을 포기하고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공계 인재 유출은 이미 대학 입시에서 의대·약대로 인원이 쏠리며 현실화되고 있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 자퇴한 학생은 2019년 2901명에서 2021년 4388명으로 51.2% 급증했다. 2021년 기준으로 이들 중 이과 비율이 61.7%에 달하는데, 교육계에서는 이들이 의대와 약대 등으로 이탈한 것으로 추정한다.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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