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 애프터 20년 2-③] 과학계, 외부에 당부하다
"부처는 본래 역할, 연구결정권은 연구자에게"
"파이오니아 과제는 시간 걸리고 성공률 담보 못해"
"국가연구는 경쟁 아니라 협력, 위상 높일 수 있어야"

연구 현장에서 과학기술 기반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을 위해 관료 그룹에 5가지 제언을 내놨다. 더 이상 연구 환경이 황폐화 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대덕넷 재편집]
연구 현장에서 과학기술 기반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을 위해 관료 그룹에 5가지 제언을 내놨다. 더 이상 연구 환경이 황폐화 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대덕넷 재편집]
-연구결정권은 연구자에게, 자율과 책임 동시에 맡겨라.
-연구개발의 본질은 가치 창출임을 명심하라.
-출연연 거버넌스 이사회에 현장 연구자 포함하라.
-과기부 본래 역할(관리 아닌 지원)에 집중하라.
-관료, 개인 출세에 과학계 이용하지 말라.

연구현장에서 관료사회에 전하는 제언이다. 편가르기가 아니다. 국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가진 관료 그룹에게 연구현장에서 전하는 메시지다. 연구결정권은 연구자에게 맡겨(자율과 책임)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관료는 연구개발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국가의 성장 엔진 창출을 위해 정부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우수인력, 예산 확보 등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다는 취지로 공무원 조직과 별개인 국책연구소로 출발했다. 국내 첫 과기부처 장관이면서 KIST 초대 원장을 지낸 최형섭 박사는 정부의 관리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예산을 보조금이 아닌 출연금으로 명명했다. 연구개발에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 결과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최빈국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과학기술 강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글로벌 과학기술 강국의 위상이 무색해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경쟁력센터(IMD)가 발표한 각국(63개국 대상)의 국가경쟁력에서 우리나라는 27위를 기록했다. 20년, 21년 23위에서 4계단 내려왔다. 주목할 부분은 과학(1↓)과 기술(2↓) 인프라의 하락이다. 거기에 경제성과(18→22위), 정부효율성(34 →36위), 기업효율성(27→33위)도 각각 추락했다. 국가의 지속성, 미래를 이끌 주요 동력 대부분이 하락한 것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과기부처와 과학기술계에서 오랜기간 연구현장을 들여다 본 노환진 교수는 이같은 지표 하락의 원인을 부처 간 갈등으로 진단했다. 부처간 갈등으로 연구개발을 협력이 아닌 경쟁구도로 몰아가면서 연구현장이 황폐해졌다는 것이다. 

출연연의 연구현장에서도 내부 경쟁이 협력문화를 망가뜨렸다고 봤다. 연구현장에서는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출연연은 서로 협력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협력을 통해 국가의 과학기술 위상을 높이고 해외 과학기술계와 경쟁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의 연구생태계는 협력 대상끼리 서로 싸우고 있는 구조다. 그러면서 과학기술 위상도 국가의 경쟁력도, 정부의 효율성도 모두 하락하는게 됐다고 지적한다.

◆ 과학기술 중요하다는데

각국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공급망 체인 변화를 경험하며 자국의 과학기술 확보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핵심기술확보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제5차 국가과학기술기본계획(23~27년)을 확정해 발표했다. 정부는 과학기술 기반 국가적 현안 해결을 큰 방향으로 잡는 등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 혁신도 과학기술 중심으로 고도화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국가 연구개발 방향성을 구체화한다고 제시했다. 출연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 정책 수립부터 시행까지 연구현장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이 열리지만 이미 정해진 답변에 구색맞추기가 대부분이다. 관료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정치인은 자신에게 돌아올 표심에 의해 정책이 좌지우지 된다는게 연구현장의 의견이다. 결국 긴 안목의 연구개발 대신 눈에 보이는, 당장 열매가 보이는 과제를 우선하게 된다. 

출연연에서 오랜기간 연구한 책임연구원은 "우리 기관의 기관장을 선임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회에도 출연연 연구자는 한명도 없다. 의견이 들어갈 수 없다. 외부 문제를 진단하면서 변화를 추진할때 내부 문제도 각성하면서 같이 갈 수 있다. 지금은 출연연 질타가 만연해 있다"면서 "당근과 채찍 중 채찍이 효과를 볼 때는 습관 분야다.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채찍을 들면 역효과, 스트레스를 받게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연구현장에 채찍만 드는 상태이다. 성과는 습관으로 나오지 않는다. 판단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데 당근과 격려가 중요하다. 판단과 습관을 구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통폐합과 기관장 교체로 연구현장은 어수선해진다. 출연연이 개혁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며 연구현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연구 현장을 지원보다 관리의 대상으로 보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연구 성과는 투입대비 산출물을 기준 잣대로 들이댄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며 이익, 소비자 만족도를 평가기준으로 보고 있다. 문제가 하나라도 생기면 연구현장 전체에 새로운 제도, 규제를 들이댄다. 앞서 보도된 누더기 공운법에서도 폐해가 여실히 드러났다. 

세금이 투입된다는 이유로 연구개발 과정, 행정도 마이크로 단위로 관리를 한다(신뢰를 얻지 못한 출연연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극히 일부다). 물론 과거와 오늘날의 출연연의 위상은 많이 다르다. 과거에는 탑다운의 산업에 필요한 개발 중심이었다. 출연연에서 개발한 기술이 기업에 적용되며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오늘의 출연연은 미래 동력이 될 퍼스트무버형의 연구개발 역할이 요구된다. 사회문제 해결, 국가의 안보, 국방 등 국가적 연구개발 임무가 부여되고 있다. 국가연구소로서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국가의 과학기술 개발을 책임지는 국책연구소로서 세상에 없는 길을 가야하는 것으로 어려움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달라진 환경을 인정하고 격려하기보다 간섭이 과도하다고 연구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애로를 호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총의 한 관계자는 "변화를 시도할때 문제를 제기하는 그룹은 항상 있다. 과학자들은 정치력이 낮다. 유연성도 거의 없다. 있는 그대로를 하도록 배워온 사람이다"면서 "과기부처나 연구현장 모두의 공통점은 비효율성을 바꿔가자는 것이다. 과정에서 관점의 차이가 당연히 발생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질타하면 안된다. 힘 대신 다독거릴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50대 출연연 연구자는 과거에 비해 과학기술 성과가 더디게 나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초기에는 과학기술 개발이 아이디어 만으로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시간이 배 이상 걸리는 상황이다. 그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30cm, 1m 더 깊이 파고 들어야 한다. 인력과 예산이 더 투입될 수 밖에 없다"면서 "과거와 비교하면 안된다. 연구진들이 더 파고 들 수 있고 좌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과도한 경쟁, 지표 하락

우리나라 연구개발 예산은 매년 증가추세다. 그럼에도 국가경쟁력을 비롯해 과학기술 인프라, 경제성과, 정부효율성 등 지표가 하락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국가연구개발 예산은 30조원, 국가전체 연구개발 예산은 100조원을 넘었다. 투자는 늘고 있는데 모든 지표는 떨어지는 상황으로 이대로라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날 출연연은 기초연구 중심의 몇몇 기관을 제외하고 PBS(과제중심제도) 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출연금 비중이 낮은 기관은 인건비 확보를 위해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을 표방하지만 결국 과학기술계 출연연간 빼앗고 뺏기는 상황이 연출된다. 평가는 관련 인사 배제 원칙에 따라 분야와 거리가 먼(?) 평가위원들이 맡기도 한다. 선명한 평가지표를 이유로 경제성, 효율성을 수치화해 점수를 낸다. 연구현장에서는 과제 발표를 위한 준비, 행정 작업에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선정을 위해 당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개발(?) 과제로 포장을 하게 된다. 모두 같지는 않지만 오늘날 출연연의 연구 기획 현실이다.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출연연의 경쟁은 시스템 하나를 놓고 뺏는 싸움이 아니다. 연구개발 특성은 지속성이 요구된다. 특히 과학기술은 캐치 업(cath up)과 파이오니아(pioneer)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에 의하면 캐치업 기술은 이미 검증된 결과로 성공률이 높게 나오는게 맞다. 90% 이상의 성공률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파이오니아 연구개발은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가는 것으로 성공률이 높게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성과는 파이오니아 분야가 더 많다. 국가경쟁력, 국가안보 등에서 선점을 차지하는 전략에 의해서다.

출연연의 한 정책 관계자는 "캐치업 기술 개발도 쉽지 않다. 파이오니아는 더욱 어렵다. 과제도 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실패하면 벌을 주는 정책이 아니라 협력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대학은 교수와 학생의 연구(국책연구단도 있지만)라면 출연연은 국가의 연구다. 협력이 필수로 국책연구소를 경쟁시키는 것은 서로 얻는게 없다"고 지적했다.

◆ 관리의 대상 출연연?

출연연의 현재 상황은 과기부도 연구현장도 알고 있다. 투입대비 성과가 없다는 질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은 어느 한쪽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내부와 외적 요소들이 작용했겠다. 

과기부처와 출연연이 서로 네탓 공방을 벌인 것은 1990년 이후로 진단된다. 출연연의 연구환경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과 맞물린다. 1966년 KIST 설립 이후 들어선 출연연은 연구자들이 가고 싶어하는 기관이었다. 해외 유치과학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선택한 연구기관이었다. 대학 교수직보다 연봉이 많게는 3배이상 높았다. 하고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선호도가 가장 우선 순위였다. 국가에 필요한 연구를 한다는 자긍심에 의대가 아닌 공대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출연연에서 25년 이상 근무한 한 연구자는 "80년대 말 박사과정 유학을 앞두고 몇몇 기관을 알아봤다. 당시 출연연의 급여가 가장 많았고 경쟁률도 가장 높아서 긴장하며 시험을 봤다"면서 "집안에서도 출연연에 다닌다고 하니 모두들 축하하는 분위기가 컸다. 요즘은 경쟁률도 낮아지고 선호도도 높지 않다"며 우려했다.

정부와 연구현장을 오랜기간 들여다본 한 과학계 인사는 과기부와 출연연의 갈등 원인을 과학계 특성을 모르는 고위 관료 부임을 들었다. 기재부를 비롯해 총리실 공무원이 과기부처에 임명되면서 투입예산 대비 성과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기특성을 모르는 그들이 과기부처에 부임하면서 과기계를 자신의 승진도구로 이용하고 출연연을 개혁의 대상, 혁신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다. 96년 PBS가 도입되고 소통과 협력이 아닌 경쟁구도로 갔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기부의 역할은 질책이 아니라 진흥육성을 위한 지원이다. 과거 20년의 과학기술이 그랬다. 관료의 계급사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산은 연구개발에서 도구이다. 도구는 단기 목적을 이룰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적용하면 모두를 망친다. 도구를 잘 써야 한다. 우리는 그 도구를 활용해 멋진 가치를 내야 한다"면서 "과기부는 보조하고 연구자들이 주체적으로 연구하면서 자율과 책임을 같이 갖고 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국가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 도구와 목표를 혼동하지 않고 서로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성모 연총 회장 역시 관료사회와 연구현장의 협력을 강조했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서로의 목표가 같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현대인은 행복, 생존을 키워드로 한다. 행복을 위해서는 철학이 좋아야 하고 생존을 위한 경쟁력 갖춰야 한다"면서 "불확실성이나 자신감 결여는 우리 사회를 좀먹는다. 서로 신뢰하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우리는 내부가 아닌 외부와의 경쟁을 위해 협력을 해야 한다. 협력할때 성과도 행복지수도 높아진다"고 역설했다.

※ 업사 애프터 2-④는 내부에 당부하다로 마무리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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